:: TEL.(02)565-6153, 421-9142 :: FAX.(02)565-6154 :: H.P.(018)235-2821 ::

▣ HOME >> 강의실 >> 명리학강의   

1부 명리학의 기초

제1장 서론
제2장 사주정립법
제3장 음양오행론
제4장 합충론

2부 원리론

제1장 십간론
제2장 신살론
제3장 육신론
제4장 격국론

3부 종합감정

제1장 육 친
제2장 부귀빈천길흉요수
제3장 직 업
제4장 궁합론
제5장 질 병
제6장 성 격
제7장 여명론
제8장 운
제9장 사건예지
제10장 실제감정
 


명리학강의 >> 명리학교실 >> 제 1 부

제1장

- - - -

서 론

1. 四柱는 과학이다
2. 四柱의 기원과 발달
3. 四柱와 일상생활


1. 四柱는 과학이다


"四柱는 과학이다"라는 명제를 말머리에 올린 것은 이미 四柱가 과학이냐 비과학적인 일종의 미신이냐 하는 논란이 있어 왔음을 인정하는 것이며, 또 그 논란 속에 깊숙이 개입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인간은 과학에 매료되어 있다. 인간이 이 땅을 딛고 서서 생명을 유지하며 사회를 구성할 때부터 과학은 인간 스스로가 알게 모르게 끊임없이 작용해 왔고,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고도의 문명을 이룩하고 그 문명의 혜택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이 모두 과학의 발달에서 비롯되었다고 믿는다. 과학은 그만큼 인간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 왔다. 이 점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며 논란의 여지가 추호도 없다.

그러나 인간에게 이처럼 많은 영향을 미치는 과학은 도대체 무엇

인가, 과학과 비과학을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어느 것이 과학이며 어느 것이 비과학인가 하는 질문에 이르면 사실 어느 것 하나 시원하게 답할 수 있는 것이 없다. 흔히 현미경과 통계를 이용한 학문이나 이론을 과학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같은 과학적인 방법에 의해 어떤 현상이나 이론을 증명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결정되고, 또한 과학이냐 비과학이냐를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이 쌓아 올린 경험과 현미경을 통한 관찰, 실험에 의하여 얻어진 통계적인 수치 . 이러한 방법에 의하여 어떤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면 그것은 과학이다.

물론 여기에는 '必然的' 결과라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과학적임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必然的' 결과라고 외쳐야 한다.

예를 하나 들어 보자. 한 그루의 목화(木花)가 있다. 그 목화는 과학적인 방법으로 증명할 수 있는 환경과 조건 속에서 성장하며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맺었다. 이제 자연법칙에 의해, 또는 필연적 결과에 의해 목화씨가 또다시 땅에 떨어져 싹을 틔우고 성장해야 할 때가 왔다.

그런데 이 목화씨가 언제 어디에 떨어지느냐에 따라서 또다시 한 그루의 목화가 되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결정된다. 비옥한 농토에 떨어지면 싹이 틀 것이나 바위틈이나 자갈밭에 떨어지면 싹을 보지 못할 것이다. 만일 우연히 부는 바람을 따라 목화씨가 날아서 자갈밭에 떨어졌다면 싹이 트지 못할 것이니 이는 그 목화씨의 운명이다. 그러나 이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하자면 기후 조건에 의해 자갈밭 방향으로 바람이 불었으니 필연적 결과라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이면 목화씨가 떨어지려고 할 때 바람이 불었을까? 우연히 그때 바람이 불었으므로 자갈밭에 떨어진 것은 목화씨의 운명이다. 여기에 대한 과학적인 설명은 예정된 기압의 변화에 의해 바람이 불게 되었으므로 필연적인 결과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이면 그때에 기압의 변화가 있었을까? 물론 여기에 대한 대답도 있을 수 있다. 말장난처럼 이어질 수밖에 없는 이 예는 이 우주의 모든 현상들이 과학적인 방법, 즉 '필연적 결과'라는 것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고 또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고도 설명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 다시 말해서 모든 현상들은 우연한 동기에 의한 필연적 결과에 의한 것이다. 우연과 필연을 극명하게 보여 주는 한가지 예를 더 들어 보자. 길을 가던 사람이 지붕에서 떨어진 기와에 맞았다고 가정하자. 그 기와가 우연히 떨어지지는 않는다. 사람이나 다른 무엇이 물리적인 힘을 가했거나 기와를 지탱하고 있던 서까래가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에 떨어진 것이므로 그 기와가 떨어지는 것은 그러한 원인들에 의한 필연적 결과이다. 그러나 그 사람이 그 길을 지나가지 않았더라면, 또는 조금 더 빨리 지나갔다면 그는 기와에 맞지 않았을 것이다. 기와가 떨어지는 순간에 그 길을 지나간 것은 우연의 일치다. 이것은 어떠한 과학이나 이론으로도 부정할 수 없는 너무도 분명한 우연의 일치다. 또 그가 떨어진 기와에 맞았으므로 다치거나 죽는 것은 필연이다.

앞의 예에서 우리는 하나의 현상 '길을 가다가 기와에 맞아 다치거나 또는 죽은 것'에는 필연과 우연이 서로 관계하면서 교차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예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길을 가던 사람의 의사와는 전혀 관계없이 기와에 맞고 다치거나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 사람의 운명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냥 "그 사람 재수가 없었군" 하고 지나쳐 버리게 된다. 그러나 진정으로 인간의 삶을 사랑하고 인간에 대해 애착을 가지며 인생을 소중히 여긴다면 이같이 작은 일들 - 길을 가다 기와에 맞은 그 사람으로서는 생명에 영향을 줄 정도로 큰 일이다 - 에 대해서도 원인과 결과를 생각해 보고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지혜를 갖고자 할 것이다.

그 지혜를 주는 것이 바로 命理學이다.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여러가지 사건들과 그 시기를 알고, 그에 대처할 수 있게 함으로써 보다 윤택하고 훌륭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체계적인 이론을 가진 학문이 바로 우리가 흔히 四柱라고 하는 命理學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命理學은 가장 인간적인 학문이다. 흔히들 命理學을 四柱라고 하는데 四柱는 命理學의 기본이며 인간의 운명을 감정하는 기본 자료가 되는 것이므로 四柱와 命理學은 엄격히 구분되어야 한다.

앞서 과학은 우연과 필연이 교차하며, 통계적 방법에 의하여 보편 타당한 진리가 도출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우연과 필연의 상호작용에 의해 보편 타당한 진리를 밝혀내는 命理學이야말로 가장 과학적인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命理學에서 말하는 四柱는 매우 과학적인 근거를 토대로 만들어진 것이다.


2. 四柱의 기원과 발달


출생이 일생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신비로운 진리를 밝혀 보려고 한 최초의 노력은 이미 3천년 전부터 행하여져 왔음이 문헌을 통해 밝혀졌다.

3천년 전 고대 중국인들은 인간의 생애에 있어서 출생이라는 것이 가장 우연적인 사실이며 이 우연에 의해 어떻게 필연적인 인생 행로가 전개되어 나가는가에 대한 규명을 위해 음양오행의 이치를 원용하여 끊임없는 철학적 사색을 해 왔다.

先賢들이 출생 年, 月, 日, 時를 중심으로 하여 인간의 운명을 예지하고 대비하려 한 것은 출생 年, 月, 日, 時, 즉 四柱가 가장 우연한 결과로 인간의 의지가 전혀 개입되지 아니하였으며 年, 月, 日, 時가 각각 독특한 氣를 띠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일정한 법칙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인간의 운명을 四柱를 통해 관찰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점차 학문적 체계를 갖춤으로써 오늘날과 같은 命理學이 된 것이니 四柱의 기원은 출생을 가장 중요시한 것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命理學이 오늘날과 같은 완전한 체계를 갖추기까지는 수많은 聖賢, 學士들의 위대한 사상적 이론적 집적물들이 시대의 前後를 연결하며 더욱 심오한 이치를 구명하게 하였으므로 가능한 것이다.

3천년 전부터 계속되어 온 命理學은 諸聖賢學士들의 연구물을 체계적으로 集大成하고 세상에 공포한 중국의 태화서봉당(太華西峰堂)에 거주하던 徐公升에 의해 본격적인 이론체계를 갖추게 된다.

서공승은 子平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데 이는 마치 물의 표면이 평평한 것처럼 사람의 생애도 평온하게 하려는 것이 命理學이므로 子平으로 통칭되었다고 한다.

현존하는 最古의 命理學書인 <淵海子平>이 바로 서공승의 저서이다. 서공승 이전의 학자로는 전국시대에 낙록자(珞록子), 귀부자(鬼斧子) 등이 깊이 연구하였고, 漢나라 때에는 중서(仲舒), 사마리(司馬李), 동방역(東方逆), 엄군평(嚴君平) 등이 있었으며, 삼국시대에는 관락(管락) 진유곽(晋有郭) 업북제(업北齊), 유위정(有魏定) 등이 대가로 이름을 날렸다.

그 뒤 唐代에는 이허중이 더욱 깊은 연구를 하여 年干을 중심으로 한 풀이법을 완성했다. <淵海子平> 이후에는 신봉장(神峰張)氏의

<命理正宗>과 明代 만유오(萬有吾)의 <三命通會>가 나왔으나 별 진전이 없었다. 劉伯溫이 쓴 <滴天髓>가 약 4∼5백년간 전하여지며 命理學上 큰 진전을 가져온 점은 주목할 만하다.

우리나라에 언제 <淵海子平>이 전해졌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중국에 크게 뒤떨어진 것은 아니다. 조선시대에 命理學이 크게 부흥하였으나 우리의 여건에 맞는 이론을 정립하지 못하였고 다만 서민층에서 구두로 전해져 내려오거나 무속과 어울리기도 하였다.

토정 이지함에 이르러 命理學에 기초한 <토정비결>이 나왔으나 음양오행에 뿌리를 둔 命理學의 본질에서 벗어나 있고 몇 개의 틀에 모든 四柱를 대입시킴으로써 스스로 한계를 고정시키고 있다. 일제시대 이후 많은 易學書들이 출간되었으나 몇몇을 제외한 대다수가 학문적 체계를 갖추지 못했거나 부실한 이론을 담고 있을 뿐이다.

최근에는 小說 등 형태를 달리한 안내서들이 몇몇 있으나 과거의 이론을 그대로 옮겨 싣거나 체계를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 命理學의 실정이라 하겠다.


3. 四柱와 일상생활


앞의 1항에서 두 번째로 예를 든 그 사람이 만일 命理學에 조예가 깊어 당일의 日運을 알고 주의를 기울였다면 그와 같은 사고를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지나친 억측이라고 주장하겠지만 필자는 분명히 그같은 사고는 피할 수 있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실제로 우리 주위에는 그와 유사한 일들이 많이 벌어지고 있다.

"어쩐지 예감이 이상하더라니 ."

"어쩐지 꿈자리가 뒤숭숭하더라니 ."

"어쩐지 ."

그렇다. 사고는 어떤 방법으로든지 예시된다. 굳이 命理學에 의해 그날그날의 日運을 보지 않더라도 예감이나 꿈을 통해서도 사고를 예견할 수 있으나 모든 사람들이 이를 무시하고 사고를 당한 후에야 비로소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命理學은 이러한 일들을 과학적으로 예상할 수 있다. 마치 과학적인 장비를 통해 일기예보를 하듯이, 命理學은 그날 그날의 사건을 예지 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임종에 이르기까지 인생의 갖가지 길흉화복을 알 수 있도록 해준다. 가장 현명한 사람은 이를 미리 알고 적절하게 대처해 나가는 사람이다.

四柱가 극단적으로 나쁜 경우는 드물지만 악재가 많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미리 알고 대처하면 大吉한 四柱를 가지고도 이를 알지 못하여 기회를 놓치고 運을 잡지 못한 사람보다 훨씬 윤택하고 평온한 삶을 누릴 수 있다. 이것은 命理學이 인생의 運과 길흉화복을 미리 알아 그것에 잘 대처하여 윤택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학문이지, 결코 정해진 운명을 무조건 받아들이라는 비관적 운명론을 주지시키기 위한 학문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 준다.

命理學은 四柱의 여덟 글자를 통해 인간의 命을 나타내는데 四柱는 그 사람의 초년, 중년, 말년의 運을 크게 구분해서 표시하고 10년을 단위로 변하는 大運과 해마다 바뀌는 歲運, 그리고 月日時의 운을 표시한다.

四柱는 또 그 사람의 조상, 부모, 형제, 배우자, 자식의 運 그리고 학문, 직업운을 말해 주며 신체의 질병과 요수(夭壽)를 말해 준다. 뿐만 아니라 성격과 이성관계, 궁합과 택일 등 인생 전반에 걸쳐 일어나는 모든 것을 표시해 준다. 따라서 인간과 가장 밀접한 관계에 있으면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命理學이다. 이를 어떻게 이해하고 이용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좌우된다는 것은 앞서 누차 설명한 바와 같다.

그러나 일각에서 命理學을 엉뚱하게 이해하고 그릇되게 이용하는 점을 종종 보게 된다. 그 첫째는 四柱를 너무도 숙명적인 것으로 받아들여 자신의 의지에 의한 삶을 포기하고 四柱에서 예정한 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태도가 있는데 이는 命理學을 잘못 이해한 데서 온 것이다.

또 하나는 일부 命理學者들이 영리에만 급급한 나머지 학자의 양심과 도리를 저버리는 경우가 있으니 이는 인간의 命을 論할 자질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무릇 命理를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은 그 이치와 본질을 꿰뚫어 天命과 분수를 지키며 행복하고 윤택한 삶을 영위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자신의 命을 모르는 사람은 君子가 아니다"고 한 공자의 말을 깊이 되새겨야 할 것이다.


| 개인정보보호정책 및 회원약관 |

洪正 자연 오행 학술연구소

서울특별시 강남구 역삼동 708-26 SK허브 오피스텔 1009호
TEL . (02) 576 - 6775, 565-6153 FAX . (02) 565 - 6153 H.P. (010) 4235 - 2821
홍정자연오행학술연구소
뒤로 처음으로 위로
회원가입안내